[법제사] 법제사 기말시험대비
- 최초 등록일
- 2003.06.19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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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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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약술형 대비1> 한국시대 호적에 대해서
<약술형 대비2> 과거 수․당의 형의 등급(五刑制度)-조선시대에도 해당
<약술형 대비3> 고조선의 8조법금 중 3법안
<약술형 대비4> 법이라는 말
<약술형 대비5> 증보문헌비고-형고 해석
<약술형 대비6> 고려사 형법지 서문 해석
<약술형 대비7> 경제육전
<약술형 대비8> 조선시대 입법자의 법사상
<논술형 대비1> 조선의 4대 법전
<논술형 대비2> 삼국시대의 법
<논술형 대비3> 토지소유권
본문내용
<약술형 대비1> 朝鮮時代 戶籍에 대해서
1. 조선시대에도 호적이 있었는데, 이는 3년마다 호구조사를 하여 그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계약이나 소송 등을 위해 호적등본을 발급하듯이 조선시대에도 소송을 위한 호적등본을 발급하였는데, 이때 종이를 관장하던 造紙署에서 제작된 作紙라는 수수료을 내고 발급받았다고 한다.
2. 호적에는 本貫과 性이 표시가 되었는데, 성 불변의 법칙과 혈연진실성을 위해 아버지의 성을 중시하였다.
3. 호적상 本籍이라는 말은 남성은 本으로, 여성은 籍이라는 말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4. 조선시대에는 戶主라는 말이 없었다. 대신에 戶首나 家長이라는 말로 표시되었는데, 호주라는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의 호주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에 불과하다. 일제가 재산법분야에 관해서는 일본민법을 도용하고 신분법분야에 관해서는 조선시대 관습법을 그대로 사용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제도가 도입된 것은 일제의 영향이 강력해지던 시대에 家의 통제를 위해 조선시대의 관습을 무시하고 일본의 권한만을 높이려는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戶首로 여자도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남녀 차별의 문제는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 일제의 호주제도에서 빗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박병호 한국법제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박병호 한국의 전통사회와 법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