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은 1930년대에서 5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작가였다. 식민지 문학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꽤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김남천이라는 이름은 꽤 생소했다. 김남천은 1911년 생으로 평양 출신이다. 1947년 월북을 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가 북에서 예술분야로 꽤 높은 위치였다는 것과 아마 숙청을 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전해질 뿐이다.
김남천은 지금까지 봐왔던 횡보 염상섭이나 백릉 채만식과는 많이 다른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작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학자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우선 김남천은 뛰어난 비평가였다. 김남천은 그의 전 생에 걸쳐서 매우 다양한 문학론을 제기했다. 고발문학론, 모랄론, 풍속론, 로만 개조론 등 그 수가 많고 깊이가 매우 깊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제기한 문학론에 걸맞는 작품을 하나씩 내 놓았다. 필자는 김남천의 글을 자신의 문학론에 대한 실험 결과로서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대체로 어떤 사건을 고발하거나 상황을 관찰하는 한 면이 매우 강조 되곤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남천의 작품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김남천을 연구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김남천이 내놓았던 다양한 문학론을 연구하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소설가로서의 김남천 외에도 김남천은 수많은 희곡을 쓴 극작가이기도 했고, 격렬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가 당시 카프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가운데 그의 문학이 어떤 전환점을 맞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남천이 주로 활동했던 1930년대는 문학적으로 암흑기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은 자치권을 잃었고 사회적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했다. 문학계에서 보자면 많은 문학인들이 변절하고 또 방황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