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연구소 편, 이제사 말햄수다', 한울, 1989, 148쪽.서북청년단은 경찰보다도 경찰력을 더 행사하는 테러와 만행의 집합체였다. ... 이하 항쟁 Ⅲ'이라 한다.미군정은 목포에서 100명의 응원경찰을 지원받아 체포와 구금으로 탄압하였고, 이에 민중세력은 민전)민전은 이 사건을 규명하기 위하여 吳英외 4인을 파견하였으나 ... 12일부터 강력한 토벌작전이 펼쳐져서 6월 중순까지 포로가 6,000명에 이르고, 유격대는 공세를 늦추고 토벌을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8월 중순이후 인민유격대는 북한의
또한 서청단원 500명을 증파했다.그런데 응원경찰 등에 의한 토벌작전은 오히려 민심을 자극, 많은 도민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 즉 '공산폭동이기 때문에 북한이 사주한 것'이라는 비약된 등식이 바로 그것이었다.이런 폭거적인 규정은 유족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불안과 공포심리를 심어줬다. ... 그러나 이 협상 직후인 5월 1일 우익 청년단의 소행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의 조작극과 ‘5·3 기습사건’등이 잇따라 발생, 평화협상의 진로에 찬물을 끼얹었다. 5월 5일 군정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