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 역사적배경과 운영실태고발
- 최초 등록일
- 2009.02.24
- 최종 저작일
- 2007.11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일본이 자행한 만행중 하나인
종군위안부의 역사적 배경과
운영실태 고발
목차
Ⅰ 위안부의 개념
1 ‘여자정신대’와 ‘종군위안부’
2 ‘종군위안부’의 유래
3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연행시기 및 특성
4 연행방식
Ⅱ 역사적 배경
1 공창제·유곽의 폐습
2 일본인의 죄의식 결핍
3 대외 침략전쟁에서 군의 사기 문제
Ⅲ 운영 실태
1 ‘위안소’운영의 형태
2 ‘위안부‘들의 생활
3 ‘위안’제공의 대가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위안부’의 개념
1. 여자정신대와 종군위안부
식민지 조선에서 정신대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일전쟁의 수렁에 빠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1년경으로 추정되며, 초기에 정신대는 농촌에서 전시체제를 강화하고 농번기 농촌노동력을 조직화하기 위해 만든 산업보국단을 가리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신대조직은 농민을 대상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으로 확대되어갔다. “증산운동정신대로 1천만 학도 원군 소학생까지 근로보국”이라 한 것과 같이 학생의 근로보국단을 정신대라 하기도 했고, “부인농업정신대 각 군서 선발하야 내지 농촌 견학”이라 한 것처럼 농촌의 남자 노동력조직뿐만 아니라 일본 농촌 견학을 위한 농촌 부인조직을 정신대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내선일체정신대로 기술과 노력의 교류, 6백 산업전사를 내지에 파견”이라 한 것처럼 일종의 산업기술연수생을 정신대로 부르기도 했고, “의용봉공의 정신대, 경성부 근로보국단 훈련방침 결정”이라 하여 도시 청소년의 근로보국단을 정신대로 부르기도 했다. 또 “열의에 찬 근로정신대는 마침내 정연맹을 단위로 결성을 보게 되었다”고 하여 일반 시민의 근로보국대를 정신대로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식봉공의 정신대들, 내 30일 경성식량보국대 신 발족”이라 한 것처럼 전시의 식량대책을 위해 식량창고업자, 정미가공업자, 식량배급업자 등으로 조직된 이른바 식량보국대를 정신대로 부르기도 했다. 보국대란 말이 따로 있었지만, 이 경우 정신대와 보국대를 같은 뜻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즉, 정신대란 말은 전시체제 아래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특별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직 등을 지칭한 일반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1943년 이후로 정신대란 말은 여자정신대 혹은 여자근로정신대에 한정해서 쓰이는 경향이 나타나다가 마침내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로령이 내려지게 된다. 이때부터 정신대란 말은 대체로 전쟁노동력으로 동원된 여자에 한해서 쓰인 듯하다.
참고 자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상』, 역사비평사, 1997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진상규명위원회 엮음『일본군‘위안부’문제 책임을 묻는다』, 2001, 도서출판 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