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한 선한 경제인의 도래-애덤스미스의 보이지않는손, 이기심의 재해석
- 최초 등록일
- 2009.02.06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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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자료는 한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의 미래의 문제들을 `선한경제인`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합리적경제인`의 문제를 보완하고, 애덤스미스의 원래의 취지를 살리고자 하는 재해석이기도 하다. `선한경제인`이 도래한다면 이 사회의 각 경제주체들의 선함을 통해 거시경제의 구조도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목차
창조주의 선한 의지
선한 의지의 경제인
죄수의 딜레마
선한의지의 경제와 각론(인터넷과 담배,음란물,사창가,등등)
국가개입의 문제(후생경제학)
본문내용
창조주의 선한 의지
창조주는 문자 그대로 세상을 창조한, 이 세상의 주인이다. 이 세상(인간과 짐승뿐만 아니라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생물, 그리고 지구 자체, 나아가 우주)을 창조했다면 그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의도에는 창조의 의지가 깃들여 있을 것이다. 인식론의 초기이론 중 ‘창조주는 우릴 속이지 않는다’ 라는 전제가 있다. 역사에 있어서 창조주는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그 존재 자체의 진실성을 보여준다. 그 존재 이후에 선하고 악함을 생각할 수 있는데, 창조주는 세상에 분노할지언정 악함을 갖고 있지는 않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대립되는 악함, 사탄이 존재함을 전제로 생각해 보자. 창조주는 선함만을 갖고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세상이 자신의 의지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분노하여,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분노의 근원도 그렇고, 과정과 결과까지도 선한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창조주는 선하기 때문에, 악할 수 없기 때문에 창조주가 지은 세상 또한 선함을 입었다. 세상은 선한의지를 통해 창조되어 선한 의지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악의 개입을 피조물인 인간이 자유(본래 창조주의 선한의지가 깃들여 있는 창조의 원동력)의지를 통해서 받아들이고, 세상은 선함과 악함이 뒤섞이게 되었다.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악함을 받아들여 선과악이 뒤섞여 있다.중국의 성선설과 성악설의 구분이 불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본래 창조주는 선하게 창조하였기에 성선설일수 있으나, 인간의 악한 의지, 죄의 개입을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악이 존재하여 성악설이기도 하다.단지 창조되었던 태초의 시기 자체에서 인간은 선하게 지어진 것이 먼저이기에 악이 섞여서 혼란한 현재의 세상에서 악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선한의지의 모습으로 회귀함을 소망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