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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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피에르의 죄수, 루저 실바리스
비인간적인 사회, 내가 사는 곳인데 당연히 적응해야지!
그래도 비인간적인 사회는 피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어요. 빨리 그러고 싶어요.

본문내용

상피에르의 죄수, 루저 실바리스
상피에르란 도시에 80년형을 선고받은 ‘루저 실바리스’라는 죄수가 있다. 그는 48m의 까마득히 높은 첨탑위의 감옥에 갇혀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 첨탑위의 감옥은 그 나라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를 가두어 두는 곳이다. 그럼 ‘루저 실바리스’는 첨탑에 갇혀야 할 만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까? 그건 아니다. 그는 단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부에게 욕을 하고 주먹으로 감자를 먹인 일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80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첨탑 위에 갇혀야 했을까?

....중략..

루저 실바리스의 정체
이 소설의 화자는 휘발유를 마시는 사람의 이야기나 손가락 끝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의 이야기와 같이 엉뚱한 경우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캐비닛에 기록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얼떨결에 그 기록의 책임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의 목숨을 위협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에 불안을 느낀 화자는 결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 섬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 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었던 화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캐비닛의 파일들을 읽어보고 또다시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어떤 사람의 삶과 닮아 있다. 그는 바로 ‘루저 실바리스’이다. 그 역시 이 소설의 화자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건너가 자신이 알고 있던 상피에르의 사람들에 대해 엉뚱한 문체로 기록을 한다. 친구도, 가족도 잃은 그에게 남아 있는건 상피에르 사람들에 대한 기억뿐이었기에 그 역시 그러한 기억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화자와 ‘루저 실바리스’는 보통 사람들이 납득하기 힘든 엉뚱한 소재들로 우리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는 ‘캐비닛’의 의미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상상하지 말라는 작가의 의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글의 작가는 자신의 인터뷰 글에서 ‘서술자’라는 존재는 자신의 편견으로 현실의 존재를 왜곡시키고 축소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루저 실바리스’는 상피에르에서 혼자 살아남았기 때문에 『상피에르 사람들』의 유일한 서술자가 되었지만, 그가 진실한 서술자인지는 아무도 검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서술자 중심으로 해석 될 것이고, 그만큼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김언수 작가는 독자가 서술자를 불신하면 할수록 서술자의 이야기는 보다 더 풍요로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독자는 작가가 우기는 진실을 의심해야 하고, 그 의심에서 새로운 진실을 읽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김언수 작가가 말하는 ‘서술자’에 대한 견해를 존중하여, 그의 이야기에서 우아하고 낭만적인 교훈을 찾아 내려고 하는 대신, 쓰여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작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의심없이 받아 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 이야기의 진실을 읽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이 글이 아닐까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