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7.09.05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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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에 대한 고찰
목차
Ⅰ. 머리말
Ⅱ. 任那日本府를 주장하는 여러 가지 설
Ⅲ. 廣開土大王碑文과 任那日本府說
Ⅳ. 任那日本府說에 대한 비판
Ⅴ. 맺는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任那日本府의 논의는 고대한일관계사나 한국고대사 또는 일본고대사에서 다루어져야 할 학술적 연구주제의 하나임에 틀림없으나,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다. 일본교과서의 서술 문제나 한일양국의 정치적 문제와 같은 비학문적인 현안과 맞물리면서 여론상의 논쟁으로 비화된 바가 적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러한 현실적 문제가 학문적 연구보다 선행되기도 하였다. 任那日本府에 대한 한일양국의 학문적 해석이 어떠하였던가, 또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서 비판만을 선행시킨다던지, 이미 극복되어진 연구를 새삼스럽게 비판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년의 한일양국의 관계가 그렇듯 任那日本府에 관한 연구나 논의가 더 이상 막연한 선입관에 의지하여 감정적 반발로는 해결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任那日本府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일양국의 학계가 어떠한 연구를 진행시켜 왔으며, 이러한 종례의 연구에서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를 먼저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任那日本府가 실제이건 허구이건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영향을 주고 있었고 한국의 고대사 연구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으로 任那日本府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논리적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근래 제시되고 있는 새로운 견해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任那日本府를 주장하는 여러 가지 說
1) 任那日本俯의 유례
‘任那’란 대체로 낙동강 서쪽의 가야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기록에는 매우 드물게 나오는데,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때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강수(强首)가 원래 임나가라 출신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렇게 任那가 지역명칭이라면, 任那日本府란 그곳에 설치된 일본의 관부를 뜻하게 된다. 즉 任那日本府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우리가 가야라고 여기는 지역 즉 任那에 있었다는 일본 고대국가의 일종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말한다. 任那日本府의 존재는 일본천왕의 신성화를 추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에만 나오는데 이 任那日本府의 존속 시기나 그 성격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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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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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태, 광개토 대왕 비문 연구, 경남대 교육대학원,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