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세서양정치사상]아우렐리우스의 정치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03.29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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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I. 오현제(五炫帝)의 시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를 통치하던 시기는 로마 제국의 쇠퇴해 가는 시기로써 밖으로는 제국 곳곳에서 자연 재해가 발생하고 안으로는 역사 속에 묵혀둔 문제들이 돌출하는 등 불안
목차
시대적 배경
I. 오현제(五炫帝)의 시대
II. 아우렐리우스의 불행한 시대
스토아 철학이란?
아우렐리우스의 삶의 철학 및 정치사상
아우렐리우스의 정치사상이 주는 의의
본문내용
I. 아우렐리우스의 불행한 시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초기부터 가뭄과 홍수라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집트와 시칠리아 섬, 그리고 사르데냐 섬은 수 백 년 간 로마의 밀 공급지였는데 그곳에 동시에 가뭄이 들어버려서 식량 안보가 흔들렸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어려움으로 고심하고 있는 중에 동방의 파르티아라는 곳이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볼가세스 3세가 로마가 방호벽으로 생각하는 나라인 아르메니아를 침공해서 자신의 동생을 왕위에 앉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까지는 로마의 지도층이 거쳐야 할 과정으로 모든 황제들이 군단에서 군대경험을 쌓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데, 제대로 대처했을 리가 만무하다. 이에 시리아 군단장이 대처를 하다가 패배를 책임지고 자결을 하다. 그런데 이 곳 총독에는 한시가 급한 사안이라 자국에서 파견하거나 그곳의 제3자를 등용해야 하는데, 저 멀리 브리타니아에서 총독을 임명하자 그 공백이 2달이나 생기면서 로마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대처가 늦어지면서 주변국들은 로마를 불신하면서 돌아서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나가지 않고 공동 황제 루키우스를 파견하는데, 루키우스는 워낙에 허영심이 많아서 동방으로 파견 가는데 가는 곳마다 놀면서 가느라 2개월이 걸리면서 인사 체계에 문제점이 들어나고 만다. 결국 전쟁을 마무리 짓고 군사들이 돌아오는데, 이들이 역병, 즉 페스트를 전장에서 옯겨 오게 된다. 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르마니아 군단을 동방에 진출시키면서 게르만 고지가 허약해지자 게르만족들이 아피아 가도를 따라서 로마의 근교까지 와서 약탈을 하는데, 로마인들은 방위선이 뚫린 것에 따른 황제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고, 제국의 시민으로써의 도덕의식도 약해져만 갔다. 또한 파르티아와의 전쟁(165년)에서 파르티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북방의 민족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파르티아의 붕괴를 자초하는 등 아우렐리우스의 판단 미숙으로 로마 제국은 스스로 쇠퇴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아프리카 마우리아 왕조가 쳐들어오고 다시 도나우전선에서 전운이 감도는 등 동시에 일이 터지는 바람에 군사적 경험이 거의 없는 아우렐리우스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코모두스 에게 제왕의 자리를 물려주게 되고, 그 후 자신은 페스트에 걸려 죽는다. 이와 같이 시대적 배경을 살펴 보았는데, 우리가 아우렐리우스의 정치사상 및 그의 삶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일반적인 스토아 철학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로마인 이야기 9 (현제의 세기) / 시오미 나나미 지음, 한길사 200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 M. 아우렐리우스 지음, 집문당 2000
아우렐리우스에게 배우는 삶의 철학 / M. 아우렐리우스 지음, 한림미디어,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