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회경제사] 주희의 사회개혁론
- 최초 등록일
- 2005.04.30
- 최종 저작일
- 2005.04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주희는 성리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을 귀하게 여겨 여러가지 사회 개혁안을 내 놓았다. 그의 정책은 부자인 백성과, 관료, 조정에서 비판받을만큼 하호(백성 중 가장 낮은 신분)를 위한 여러 정책을 내 놓았는데 1. 사창제의 성립 2. 남강의 사회와 구황책 3. 절동에서의 세수개혁안 4. 장주의 경계법 등이 있다. 본 글은, 부산대 조동원 교수님의 주희의 사회 개혁안 논문 요약본이다.
목차
1. 사창제의 성립
2. 남강의 사회와 구황책
3. 절동에서의 세수개혁안
4. 장주의 경계법
본문내용
4. 장주의 경계법
1190년 주희는 본건 장주의 태수로 부임하여 경계법의 실시를 건의하였다. 경계법이란 세역의 기준이 되는 토지 조사 사업인데, 결국 생전에는 이루지 못하였다. 경계의 목적은 겸병의 억제를 토지 재조사와 세역의 균분을 통해 하려하는 것이었다. 주희는 장주에 부임하자 우선 세제상 빈민에게 과중하게 부과된 잡세를 감면해 줄 것을 청하여 감면 받았다
주희는 일찍부터 향촌의 백성을 곤궁하게 하는 폐단이 균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주현의 회계가 들어올 것을 정해 쓸 것을 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데서 연유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또한 주현의 빈부가 현격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맹자의 정전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군사의 비용은 잡과로 충당되는데 주희는 둔전의 실시를 주장했다. 군민의 잡경을 반대하여 둔전내의 민전을 다른 곳과 맞바꾸어 순전한 군둔유지를 하고, 이를 민병과 연합하여 군둔은 대장이 민둔은 태수가 관리하게 하고 이 둘을 둔전리??가 총괄하게 하였다.
종전까지 주희는 상호의 이익을 배려해야한다고 생각하였으나 하호를 곤궁화 시키는 일임을 알았다. 경계법은 관부. 세민에게 이롭고 호활한 호에게 불편한 것이라 말하였다. 장주는, 토지 조사 시행이 어려웠고 조세 기준은 종자 한 말 당 산전 몇 10문으로 상호의 토지은결, 매점이 심했다. 즉 상호가 하호의 토지를 전매하고 그 조산은 받지 않아 상호는 밭은 많은데 세금이 적고, 토지를 잃은 하호는 없는 땅의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관부에서는 알 수도 없고 조세 장부상 이름에 따라 세를 걷음으로 안다해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이에 하호가 도망을 가면 세를 맞추기 위해 인근의 호에게 나누어 걷고, 도망간 하호는 산적이 되곤 했다.
주희는 경계법 실시에 있어, 향촌 통치의 이원화를 다시 시도하였고 현을 통틀어 일관 구분하여 밭 종류, 성격 차이 등을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 으로 통산하게 하고 산전을 산출하였다.
경계 이후에 민전의 납세는 무겁고 관전의 납조는 가벼워질 것이며, 경계 실시 목적이 관부. 세민에게 유리하고 호강호에겐 불리하다. 황무지는 관전 소유이므로 청전이 가능하며 관전의 청전이 확대되면 관조의 수입이 많아질 것이며 민전의 세수도 늘어난다. 관부 수입을 증대로 민간에 비판받기도 한 정책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