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막스주의]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환경주의,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생태위기,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계급관점,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 비판
- 최초 등록일
- 2013.09.04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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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환경주의
Ⅲ.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생태위기
Ⅳ.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계급관점
Ⅴ. 생태막스주의(생태마르크스주의)와 비판
본문내용
Ⅰ. 개요
먼저, 가치의 본질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노동가치론의 공리적 명제가 자본주의라는 조건에서 모든 활동을 가치화하려고 하는 욕망, 노동의 욕망을 생산함을, 그리고 모든 욕망이 그 욕망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노동하지 않는 자,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부르주아지의 적대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았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지의 이 주장을 근본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비용이라는 논리만으로 그러한 반박에 충분할까? 예컨대 실업자들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력 재생산 비용인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동가치론의 저 공리적 명제를 전제하는 한, 그들은 노동하지 않는 자고, 따라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하는 사람은 대체 바보란 말인가?’ 이게 단지 부르주아지만의 생각일까?
우리는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 끔찍한 주장을 근본에서 뒤집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하지 않는 자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즉 노동을 하든 안 하든 먹고 살 수 있는 비용,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사회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물론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노동에 대해 별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려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 경우 최소한의 임금에 경제적으로 만족하면서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하고 살거나, 아니면 좀더 경제적으로 나은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하는 판단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노동은 비로소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 될 것이다.
활동을 가치화해야 한다는 노동의 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것은 가치화를 통해서만 활동이 노동이 되는 현실적 조건을 돌파해야 함을 뜻한다. 바로 그런 만큼 그것은 가치화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정의하는 이론적 명제를 돌파해야 함을 뜻한다. 노동의 인간학이라는 인식론적 배치에서 벗어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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