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전통한지의 역사와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한지의 물성을 알아본다.
목차
1) 한지의 발전과 재료적 특징
(1) 한지의 역사
(2) 한지의 재료적 특성
본문내용
1. 한지의 재료와 물성
1) 한지의 발전과 재료적 특징
(1) 한지의 역사
한지는 한국에서 손으로 뜬 종이로서 중국의 수제지인 화지(華紙)나 일본의 수제지인 화지(和紙)와 구별하여 지칭한 것으로 옛날의 계림지(鷄林紙), 고려지(高麗紙), 조선지(朝鮮紙)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명칭이 한지로 바뀐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918~1392년)는 우리종이의 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불서(佛書)와 의서(醫書), 사서(史書)를 비롯한 각종 서적의 출판이 활발해졌으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속장경(續藏經) 간행 등 거대한 인쇄사업이 반복되었다. 국가차원에서 서적점(書籍店),지소(紙所),조지부곡(造紙部曲) 등이 운영되었고 이 시대 만들어진 고려지는 질기기로 유명하여 중국에서는 고려피지(高麗皮紙)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원이 고려에 요구한 물품 가운데 지십만장(紙十萬張)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격치경원(格致鏡原)에서는“고려의 종이는 비단을 만드는 누에고치 실로 만들어 색깔도 비단 같고 질기기도 비단과 같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면 먹의 번짐도 좋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다. 기이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극찬한 것으로 보아 고려지의 그 우수성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1392~1910년) 한지의 발달사는 임진왜란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뉠 수 있는데 전기는 우리나라 제지기술이 완성단계로 활자 인쇄술이 발달하고 제지업이 국가 주요산업으로 정착하게 된다. 조선건국 후 왕권의 안정을 이룬 태종의 중앙집권의 일환으로 개혁을 시도하면서 고려 말 공민왕(재위 1351~1374)때 처음 실시된 저화제를 도입하여 유통하게 된다. 저화(楮貨)보다 포화(布靴)사용에 익숙했던 민간의 인식을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국가에서는 강력히 저화제를 시행하였고 이에 태종15년(1415년) 조지소가 설치되면서 균일한 두께의 저화지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지소는 점차 저화지를 만드는 일보다 다른 용도의 종이를 생산하는 등 조지소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확대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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